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친일행위를 했던 이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에 국권을 피탈당하고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며 나라를 지켜내려 애썼던 고종, 반면 그의 형은 친일행위를 하며 꼬마아이도 알만한 역적 이완용보다 무려 5배가 넘는 이득을 챙겼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조선 왕실 출신으로 친일파를 했던 인물, 흥선대원군의 장남이며 고종의 형이었던 '이재면'의 친일행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장남 이재면(이하 이재면)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인물로, 그의 친일 행위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1. 이재면의 배경
이재면(1846-1912)은 조선 왕실의 일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장남이자 고종의 형입니다. 그는 일찍부터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영향력 덕분에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선 말기 급변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친일 행위로 역사에 기록되게 됩니다.
2. 이재면의 친일 행위
이재면의 친일 행위는 주로 한일합병 이전과 이후에 걸쳐 나타납니다.
- 일본과의 협력: 이재면은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일본과 협력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압력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했으며, 일본 측에 유리한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 자작 작위 수여: 1910년 한일합병이 이루어진 후, 이재면은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습니다. 이는 일본 제국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조선의 귀족들에게 내린 칭호로, 이재면은 이를 수용함으로써 일본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재산 축적: 이재면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일본 당국은 그를 통해 조선 귀족 사회를 안정시키고, 그를 통해 조선 백성들의 반발을 완화시키려 했습니다.
3. 역사적 평가
이재면의 친일 행위는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생존과 권력 유지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조선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이재면의 친일 행위는 현재에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는 그가 단순히 일본과의 협력에 그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자주성을 포기하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아들인 역사적 행위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적 때문에 이재면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친일파로 분류되며, 그의 행위는 한국사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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